나의 감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장황한 말버릇과 강박적 악취미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I come with the rain

근 몇 달 간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낫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진 않지만, 그 덕분인지 이도 저도 아닌 독특한 뒷맛이 흥미롭다. 게다가 이만큼 진지하고 대담하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을 외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조연 배우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미지와 생각이 묘한 조합을 이루는 것 역시 약간 불편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렇지만 흥행은 어려울 게 틀림없다. 월요일 오후 10시에 보긴 했지만, 관객은 나를 포함해 넷뿐이었고, 심지어 내 근처에 앉았던 커플은 중간에 나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웹에 올라온 감상을 대충 둘러봤는데, 저주에 가까운 평까지 심심치 않게 보여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다. 나와 같은 취향은 점점 더 소수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나 싫어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편집이 불친절하고 배경음악이 악취미적인 게 사실이며 전체적인 짜임새도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고통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건 훌륭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신약의 재해석으로 불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누아르-스릴러와 결합해서, 말초적 자극과 종교적 성찰 사이를 오가는 특별한 작품이 됐다.

누군가는 '배우들이 영화를 살렸다.'라고 평했지만, 사실 배우들의 연기가 특출한 건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의 밋밋한 연기를 이야기의 힘이 보완하는 인상이다. '고통과 구원'이 주제라면, 다들 조금 더 절박했어야 했다. 클라인(조쉬 하트넷)이 느끼는 혼란과 고통은 가슴에 와 닿지 않고, '능력자'치곤 카리스마가 부족한 키무라 타쿠야는 미스캐스팅이란 생각마저 든다. 이병헌이 연기한 수동포라는 인물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그 모호함과 뵨 사마의 안정된 연기 덕분에 상당히 매력적이다. 연쇄살인마 하스포드도 전형적이긴 하나 나름 매력적인 인물인데, 여주인공 릴리는... 감독 사모님이 여주인공을 맡는 건 좀 참아주시지. 나태한 여신의 이미지를 의도한 듯한데, 내 눈에 영 어색하고 모자를 뿐이다.

그리고 라디오헤드는, 나도 팬이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작작 좀 우려드시길. 이 정도면 BGM 테러다.

39계단

즐겨 보는 '씨네21'에 내가 번역한 작품의 소개글이 실렸다.
훌훌 페이지를 넘기다가, 눈에 익은 표지가 나와서, 깜짝!!
호의적인 평, 감사할 따름이다. 부디 많이 팔려서 후속작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링크 - 씨네21 [도서]쫓기는 자의 심장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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