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학사 책인데, 조금 독특하다. 우선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저자인 점이 그렇고, 다루는 범위에 비해 분량이 당황스러울 만큼 적다.

보르헤스는 스페인어-영어 이중 언어사용자였고, '도서관의 작가' - 실제로 오랫동안 도서관 서기에서 관장까지 역임했으니까 - 라는 별명에 걸맞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을 탐독했다. 당연히 미국문학을 비롯한 세계문학에 정통했고, 아르헨티나와 미국의 명문 대학들의 초청으로 영미문학 순회강연을 했으며, 일반 대중을 위한 문학 강연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아마 그때의 강의 노트, 혹은 메모 정도가 아니었을까.

솜씨 좋게 정리한 미국문학의 역사가 참 쉽고 재밌게 읽힐뿐더러, 저자의 촌평도 예리하고 믿음이 가는데, 워낙 내용이 적다 보니 아쉽다.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쓴 글임을 감안하더라도, 솔직히 감질난다. 미국문학사 과목을 수강한 게 벌써 10년 전인데, 나 같은 까마귀에게도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 딱 뼈대만 간추린 거라고 봐야겠다. 딱 '이런 게 있으니까 궁금하면 직접 찾아봐' 수준에서 멈춘다.

물론 간략한 점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을 터. 특히 미국문학사 과목을 수강하는 대학생이라면 학기 초에 슬쩍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중요한 사조와 작가들, 그들 사이의 관계들이 잘 정리됐기 때문에,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는 데 아주 좋다.

그리고 전통적 고전 외 문학에 대한 언급도, 너무 짧긴 하지만, 마음에 든다. (영문과에서 무시되곤 하는) 헨리 밀러에 대한 해설도 좋았고, 인디언 시가도 참신했는데, 러브크래프트까지 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영감님 정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으신 듯.

이 책을 읽고, 새로 관심을 갖게 된 작가가 몇몇 있는데, 그중에도 Theodore Dreiser, Sinclair Lewis, Edna Ferber가 끌린다. 마침 주요 작품들이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올라와 있다, 오예!